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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붕어빵 장사 회고록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나는 붕어빵 장사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돌아보며 정리한 회고록이다.

왜 시작했나?

2023년 여름, 회사에서 맡고 있던 프로덕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가 만든 이 좋은 제품이 왜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주변 동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했지만 뚜렷한 해답은 없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네이버, 라인 등의 고객사 기술 지원에 특화되어 있었고, 회사 역시 '기술' 그 자체에 무게를 두는 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적 시각에서 논의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문화는 자리잡기 어려웠다. 나 역시 점점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무렵, 이직 면접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 면접관에게 피드백을 요청한 결과, “서비스 경험의 부족”이라는 답을 들었다. 내가 주로 플랫폼 업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실제 비즈니스 로직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이때부터 ‘비즈니스 중심의 일’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부족한 서비스 경험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돈을 버는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경험’은 실제로 부딪혀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즈음, 붕어빵을 유독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예전부터 "내가 먹으려고라도 붕어빵 장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다시 물어보니 여전히 생각이 같았고, 그렇게 우리의 붕어빵 사업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가장 큰 고민은 ‘어디서 장사를 할 것인가’였다. 붕어빵의 경우 ‘XX붕어빵’, ‘잉어빵XXX’처럼 마차와 장비를 제공해주는 업체가 여러 군데 있다. 이런 업체를 통해 마차를 대여하면, 지정된 장소까지 배달과 설치는 도와주지만, 이후 운영은 온전히 우리 몫이었다.

문제는 ‘어디서 파느냐’였다. 수도권 대부분은 무허가 노점에 대한 단속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무인 가게나 테라스가 넓은 매장들을 직접 찾아가, 가게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해도 될지 정중히 여쭈었다. 어떤 무인라면 가게 사장님과는 “장사하는 동안 대신 청소나 발주를 도와드리겠다”는 조건으로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가게가 오픈 초기 단계라 무산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 붕어빵 마차를 빌린 업체 대표님의 동네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노점 자리 하나가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정한 자릿세를 지불하고, 그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떻게 운영했나?

장사 첫날, 하루 수익이 20만 원을 넘겼다. ‘오픈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숙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 종일 기계를 돌리고, 주문을 소화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수작업의 한계를 체감했고, 고객 응대에서 실수가 반복될수록 고객의 경험은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11월 이후에 배포한 현장 주문과 원격 주문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 페이지
11월 이후에 배포한 현장 주문과 원격 주문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 페이지

그날 밤, 간단한 주문 웹앱과 관리자 페이지를 개발했다. 테블릿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UI를 구성했고, 이틀 만에 현장에 도입했다. 이후 약 한 달간, 주문 시스템은 점점 고도화되어 원격 주문 → 실시간 알림 → 픽업 알림까지 포함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위기

11월쯤, 가까운 거리에 새로운 붕어빵 가게가 생겼다. 매출은 눈에 띄게 줄었다. 경쟁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우리 가게의 ‘강점’을 재정리했다.

  • 온라인 주문 시스템 (대기시간 최소화)
  • 예쁜 사장님의 친근한 응대 (학생들과의 공감대 형성 잘함)

이 세 가지는 다음과 같은 타겟층에게 특히 매력적이었다

  • IT 서비스가 친숙한 20~30대
  • 고등학생 및 중학생
  • 사장님께 호감을 느끼는 젊은 남성 고객

하지만 이 타겟층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더 넓은 연령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맛’과 ‘재료’에서 차별화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의외로 붕어빵의 원가는 ‘반죽’이 더 비싸고, 앙금은 더 저렴하다. 이를 바탕으로 반죽을 최대한 얇게, 속을 빵빵하게 굽는 연습을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재료를 아끼지 않는 붕어빵집”이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매출도 다시 안정되었다.

무엇을 느꼈나?

3개월간의 붕어빵 장사는 내게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나 이색적인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기획자이자 운영자, 개발자이자 영업 담당자, 심지어는 고객 응대까지 도맡은 하나의 서비스 오너로서 시장에 나섰던 시간이었다.

붕어빵이라는 작고 단순한 상품을 팔면서도, 나는 다음과 같은 전체적인 사이클을 직접 경험했다.

  • 도메인 선정과 수요 분석: 사람들은 왜 붕어빵을 사 먹는가? 어떤 계절, 어떤 위치, 어떤 시간대에 수요가 몰리는가? 이 단순한 질문을 통해 고객 관점의 ‘시장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피부로 체감했다.
  • MVP 구현과 반복 개선 : 불편한 주문 시스템을 직접 웹앱으로 개선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기능을 고도화하면서 느꼈다. "완벽한 기술"보다 “작동하는 경험”이 우선이며,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고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기술 전략이라는 것을.
  • 브랜드와 경험의 차별화 : 경쟁자가 생겼을 때 우리가 택한 전략은 "더 예쁘게" 혹은 "더 싸게"가 아니었다. 우리는 "더 빨리", "더 편하게", "더 진심으로"라는 방향으로 접근했고, 이는 실제 매출 회복으로 이어졌다. 고객은 제품만이 아니라 ‘느낌’을 소비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이 경험은 내가 속한 회사의 비즈니스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와 감각을 만들어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회사 내에서 주로 기술 중심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 “우리가 개발하는 기능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 “고객이 느끼는 진짜 불편은 무엇이며, 그것을 기술로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가?”
  • “팔리는 서비스란 무엇이고, 그 조건은 어디서 결정되는가?”

내가 경험한 붕어빵 장사는 작지만 실제 시장에서의 ‘전투’였다. 그 과정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상인의 시선으로 판단하며, 기술자의 손으로 빠르게 개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단순히 ‘기능을 만드는 개발자’가 아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을 설계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획자이자 실행자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붕어빵 장사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